• 2026. 1. 3.

    by. 시질로그래피 연구자

    고대 인장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교 체계, 그리고 경제 활동까지 반영하는 일종의 ‘압축된 정보 장치’로 간주된다. 이러한 인장을 판독하는 시질로그래피(sealigraphy)는 인장에 새겨진 기호, 문양, 언어적 요소, 재질, 그리고 맥락을 바탕으로 복합적인 분석을 수행한다. 하지만 분석 대상이 되는 인장 하나가 연구자나 해석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일한 인장을 두고서 상반된 해석이 등장하는 이유는, 시질로그래피 자체가 다양한 학제와 가설을 수용하는 복합적 해석틀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동일한 인장이 어떻게 상반되게 해석되는지를 시질로그래피 관점에서 설명하고, 그 해석의 배경과 문화적 맥락, 해석 방법론의 차이에 따른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시질로그래피에서 동일 인장이 상반되게 해석되는 원인 분석

    시질로그래피에서 동일 인장의 해석이 서로 달라지는 이유는 단순히 학자 간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구조적으로 접근해 보면,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 정보의 우선순위와 해석 방식의 차이가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연구자는 인장에 새겨진 문양의 세부적인 조형 특성, 예를 들어 인물의 자세, 상징물의 방향성,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에 집중하는 반면, 다른 연구자는 인장이 실제로 출토된 고고학적 층위, 함께 발굴된 유물, 건축물과의 공간적 관계에 무게를 두며 해석을 진행한다. 동일한 인장이라도 어떤 정보 단위를 먼저 해석 대상으로 삼는지에 따라, 기능적·상징적 해석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인장의 용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는 인장의 기능을 ‘행정 문서 봉인용’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다른 학자는 동일 인장을 ‘왕실 의례 도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추정이 아니라, 해당 인장에 등장하는 문자의 존재 여부, 특정 도상이 인장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지 주변부에 있는지, 그리고 압인 방식이 회전형인지 단면형인지와 같은 세부적 요소에 따라 해석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질로그래피는 고정된 분석 프레임을 갖지 않으며, 문헌 사료, 도상학적 분류, 재료 분석, 3D 복원 기술, AI 기반 이미지 판독 등 다양한 도구와 학문 간 연계를 바탕으로 복합적으로 구성된 해석 시스템이다. 이처럼 분석 접근이 다층적인 만큼, 해석자마다 주목하는 정보의 층위와 분석 순서, 기술적 해석 도구의 활용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인장을 분석하더라도, 해석 결과는 ‘사실’의 일치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정황의 다층적 해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장이 제작된 역사적 시기와 사용 환경에 대한 선이해 역시 해석의 방향을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한다. 예컨대 한 연구자가 특정 인장을 후기 우르 왕조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경우, 그 해석은 제국 행정 체계의 맥락에서 구성될 수 있다. 반면, 동일한 인장을 초기 왕정기 혹은 신관 중심 체제의 유산으로 본다면, 해석은 종교적 기능이나 지역 공동체의 의례적 구조로 전환된다. 이처럼 사전적 역사 인식의 차이 또한 해석의 불일치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시질로그래피에서 동일한 인장이 상반되게 해석되는 현상은 단순한 오류나 편차가 아니라, 다층적인 정보 선택과 분석 기준의 차이에 기인한 결과이며, 이는 시질로그래피 자체가 포괄적이고 유동적인 해석 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문헌 자료와의 교차 비교에서 생기는 해석의 불일치

    많은 시질로그래피 해석은 인장 자체만이 아니라, 해당 인장이 언급된 문헌이나 비문, 기록과의 비교를 통해 진행된다. 하지만 고대 문헌 역시 모호한 표현이나 불완전한 기록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인장 해석에 적용할 때 해석자 간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수메르의 ‘국왕 인장’ 해석 논쟁이다. 한 연구팀은 특정 실린더 인장에 새겨진 도상이 왕이 신에게 무릎 꿇는 장면이라고 해석한 반면, 다른 연구팀은 동일 도상을 왕이 신과 동등한 위계에서 협상하는 모습으로 해석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해석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그 인장이 표현하는 왕권의 개념 자체에 대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도상 해석의 문화적 편향이 동일 인장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도상(iconography)의 해석은 매우 섬세하고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현대 해석자가 자신의 문화적 배경이나 관점에 따라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문화적 편향이 개입되어 동일한 인장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인장에 새겨진 인물이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을 어떤 학자는 ‘경배’의 표현으로 해석했고, 또 다른 학자는 ‘저항’ 또는 ‘거부’의 상징으로 해석한 바 있다. 두 해석 모두 외형적으로는 논리성을 지니지만, 이 인장이 포함된 전체 도상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편향은 특히 종교적 도상을 해석할 때 자주 나타나며, 시질로그래피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동일 인장 해석 시, 문화 상대주의적 접근과 교차검증이 필수적이다.

    동일 인장이 다르게 해석되는 사례를 시질로그래피로 설명하기

    기술적 복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각 정보 왜곡의 사례

    현대의 시질로그래피는 3D 스캐닝, 이미지 재구성, 고해상도 렌더링 등 기술적 도구를 활용하여 훼손된 인장을 복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니며, 때때로 알고리즘이 자동 추론한 시각 정보가 원본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실제로 한 인장의 경우, 손상된 문양을 디지털 알고리즘으로 복원했을 때, 학자 A는 복원된 이미지에서 '농경 장면'을 판독했고, 학자 B는 동일 이미지를 '의례적 제물 봉헌 장면'으로 해석했다. 이는 복원 알고리즘이 문양의 굴곡과 반복 패턴을 보정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도상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기술에 의존한 복원이 오히려 해석의 다양성을 증폭시키고 있는 현실은, 동일 인장이 왜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용 맥락의 차이가 동일 인장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경우

    동일한 인장이 서로 다른 문맥에서 사용되었다면, 그것이 전달하는 상징성이나 기능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특히 고대 도시 국가들이 동일한 형식의 인장을 서로 교역하거나 모방했을 때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에서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던 특정 문양의 인장이, 후대에 이르러 일반 행정 문서의 봉인 도구로 전용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경우 동일한 인장이 시대별로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을 수 있으며, 이는 인장 자체의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동일 인장이 묘지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는지, 행정 문서와 함께 발견되었는지에 따라 해석 방향이 달라진다. 맥락에 따라 인장의 상징이 ‘영원한 신분’의 표시일 수도 있고, 단지 관료 체계에서의 일상적 사용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학문 간 해석 방식의 차이도 해석 불일치에 기여한다

    시질로그래피는 고고학, 문헌학, 종교학, 미술사, 재료과학 등 다양한 학문과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각 학문이 동일한 인장을 해석할 때 적용하는 관점과 목적은 다르기 때문에, 해석 결과 역시 상이할 수밖에 없다.

    문헌학자는 인장에 새겨진 문자의 비교를 통해 해석의 방향을 잡는 반면, 종교학자는 도상 속에 담긴 의례적 의미나 상징성을 중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미술사는 문양의 양식적 특징에 집중하며, 재료과학자는 제작 기법과 사용 흔적에 주목한다. 이처럼 접근 방식이 서로 다르다 보니, 동일 인장을 놓고도 해석의 초점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학제 간 협업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상이한 해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해석을 조율하고 비교함으로써 보다 정교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시질로그래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해석의 다양성은 위협이 아닌 확장의 기회

    동일한 인장이 연구자나 해석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는 현상은, 시질로그래피가 가진 태생적 속성 중 하나다. 이로 인해 해석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석의 다양성이 시질로그래피의 학문적 폭을 넓히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석의 불일치는 대부분 정보의 부족, 해석 관점의 차이, 문화적 편향, 기술적 한계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을 인식하고, 해석 간 비교와 교차 검증, 맥락적 분석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하나의 인장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은 단일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당대 문명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시질로그래피는 단일한 진실을 추적하는 도구라기보다, 다층적 진실을 구성하는 과정 그 자체에 가깝다. 동일한 인장이 가진 의미의 다양성은 학문적 갈등이 아니라, 고대 세계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통찰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